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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히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닙니다. 그는 음악 애호가이자 전직 재즈바 운영자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항상 음악이 흐릅니다.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의 정서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 가지 장르—재즈, 클래식, 팝—을 중심으로 하루키 세계에 흐르는 음악 코드를 해석해보겠습니다.

    재즈: 자유와 즉흥의 문학적 리듬

    음악 듣는 하루키
    음악을 듣는 하루키

     

    하루키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 장르는 단연 ‘재즈’입니다. 그는 실제로 스무 살 무렵부터 재즈바를 운영하며 음악을 삶의 일부로 삼았고, 이 경험은 그의 문체와 세계관 전반에 깊이 녹아 있습니다. 『댄스 댄스 댄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등 그의 대표작 속에서는 재즈 음악이 주요 테마처럼 흐릅니다. 재즈의 즉흥성과 자유로움은 하루키 소설 전개의 유연함과도 닮아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플롯 전개, 장르적 경계의 파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체는 마치 재즈 연주자들의 ‘즉흥 솔로’와 같은 감각을 줍니다. 그는 재즈가 “정답이 없는 자유”라는 점에서 글쓰기와 닮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은 종종 재즈 LP를 들으며 감정을 다스리거나, 외로움을 견디고, 사랑을 떠올립니다. 이러한 장면은 독자에게도 음악을 ‘듣는 듯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하루키 작품만의 특별한 리듬을 완성합니다.

    클래식: 내면의 세계를 울리는 깊이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은 정제된 감정, 묵직한 고독, 철학적 사유를 상징합니다. 『1Q84』에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와 <시농시농>이 중심에 놓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이어주는 상징적 사운드로 사용됩니다. 클래식 음악은 하루키 세계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강하게 연결됩니다. 아오마메가 <시농시농>을 듣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감상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며,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 고립, 그리고 존재의 이유가 음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클래식은 하루키 소설 속에서 감정을 숨기고 있는 인물들의 마음을 해독하는 열쇠 역할을 합니다. 또한 클래식은 하루키 문장의 구조에도 영향을 줍니다. 문단 간의 호흡, 리듬, 감정의 고조와 이완은 마치 교향곡의 흐름을 닮았습니다. 이는 문학과 음악이 하나의 감각으로 통합된다는 하루키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팝: 시대성과 감성의 연결 고리

    비틀즈, 비치보이스, 사이먼 앤 가펑클, 마빈 게이 등 하루키 소설에는 시대를 상징하는 팝 음악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곡 제목에서 따온 이름으로, 주인공 와타나베의 감정선과 완벽하게 연결됩니다. 이처럼 하루키는 팝을 통해 ‘시대의 정서’를 텍스트에 녹여냅니다. 팝 음악은 재즈나 클래식보다 더 직접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하루키는 이를 활용해 독자가 자신만의 과거 경험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장면을 구성합니다. 음악이 들릴 때 독자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감각적 기억은 소설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킵니다. 또한 팝은 인물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듣는 노래는 그의 성격, 가치관, 내면을 표현하며,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줍니다. 하루키는 이를 통해 음악이 인간의 내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은밀하게 드러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주체입니다. 재즈는 자유와 즉흥, 클래식은 깊이와 고요함, 팝은 감성과 시대를 담아내며, 하루키의 세계를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듭니다. 하루키 소설을 읽는다면, 이제 그 속의 ‘음악’을 함께 들으세요.